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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볼만 한곳

서울 도심 한복판 나도 몰랐던 곳 창신채석장전망대 리얼?

by 그니차니맘 2020. 6. 3.

요 며칠 한풀 꺽인 듯 하더니 다시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 19로 인해 모두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시죠~

생각보다 너무 길게 가니 온나라가 ... 아니 온세계가 어수선 한 것이 정말 얼른 잠잠 해 져야 할텐데.....

시간이 가면  이 또한 지나가겠죠~

모두들 힘내시구요~ 

우리 이웃님들도 아시고 계신가요?

서울 도심 한복판에 채석장전망대가 있다는데..... 바람 쐬러 다녀오세요~

서울의 종로구와 성북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낙산 아래 위치한 종로구 숭인동 ,창신동에 있는 채석장이

지금은 전망대로 탈바꿈하여 서울주민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이 찾고 있는  관광코스가 되었다고

합니다.

 


낙산은 높이 약 125m 로 서쪽으로는 인왕산 ()과 동서(西)로 마주보며 대치하는 산입니다.

산모양이 낙타등과 같다해서 낙타산이라고 하며 낙산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인들에 의해 파헤쳐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서울 남산과 인왕산, 북악산과 함께 서울을 둘러싼  능선을 형성하고 있고 조선시대 낙산의 능선을 따라 성곽이 만들어졌다. 낙산의 성곽은 지금도 유명한 명소로 알려져 있고  산 북쪽에 있었던 홍화문(:)은 없어졌으나, 남쪽에 있는 흥인지문(:)은 남대문과 함께 서울의 상징이 되고 있고,낙산에는 낙산의 유방이라고 불렸던 약수터 2곳이 있었는데  이화동약수와 신대약수로 불렸다. 신대약수에는 강세황의 글씨인 홍천취벽()이라는 암각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오래 전부터 숲이 우거지고 야트막한 산으로 산책길로 많이 이용되었는데 조선시대에는 문인들이 낙산 인근에 별장을 짓고 살았다. 인평대군이 거처했던 석양루()가 있었고, 그외 이화정(), 일옹정(), 백림정() 등의 정자가 있었다. 단종이 수양대군(, 세조)에 의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를 떠날 때 단종비 정순왕후()는 단종과 이별하고 이곳 낙산에 은거하며 살았다고 전해진다. 정순왕후는 폐서인되어 낙산 아래 청룡사의 승려가 되었고 창신동 골짜기에서 비단에 자색 물을 들여 시장에 내다팔며 살았다고 전한다. 현재 이곳에는 당시 샘물이 있던 곳에 자지동천()이라는 암각자가 남아있다. 그리고 고종 때인 1868년에 건립되었으며 조선의 군무를 총괄하던 삼군부()의 총무당이 있었는데, 1880년에는 통리기무아문의 청사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제국대학이 낙산 아래 위치했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집인 이화장()이 지금도 남아있다. 사찰로는 고려시대 도선국사가 창건한 청룡사()가 있고, 고려시대 혜거국사가 창건한 미타사()가 있다. 미타사는 여승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그리고 고려시대 담진국사에 의해 창건된 보문사()가 있다. 근래에는 한 때 산 중턱까지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지만, 공원녹지확충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어 아파트가 철거되고 성곽이 복원되었으며 낙산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지금은 평화롭게 고요한 모습으로 서울 한복판에 떡 버티고 서서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 보고 있는

창신채석장전망대 ~

일제 강점기로 접어 들면서 일제가 서울에 석조 건물을 짓기 위해 경성부 직영 채석장으로 활용하면서

창신동,  숭인동 일대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합니다. 낙산은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데다가 낙산의 화강암은 질이 좋기로 유명하여 조선 총독부와 시청, 옛 서울역 ,그리고 한국은행 등 석조 건물을 짓는 데 사용하였다. 위치상 동대문 바로 밖이라 캐낸 돌을 실어 나르기가 편해 창신동채석장은 최고의 채석장이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부터 채석장 사용은 중단되었고,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상경한 이주민과 피란민이 채석장 주위로 모여들면서 돌산마을이 생겼다. 지금의 창신동·숭인동 주변 지역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창신동채석장전망대는 지난  2007년 뉴타운 지역으로 지정되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뻔했으나, 주민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계획은 무산되었다.

하지만  2014년 ‘전국 1호’ 도시 재생 지역으로 선정이 되어 국내 도시 재생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2019년 11월 창신동채석장 상부에 문을 연 창신숭인채석장전망대는 한양도성을 비롯해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보인다. 전망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벽돌 2개가 맞물린 듯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3층 건물이 주변 경관과 묘하게 어우러지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해당하는 고도 121.5m 전망대까지 이용 할 수 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오르면 정면으로 동대문 DDP를 비롯한 두타와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보이고 오른쪽으로 한양도성과 남산이 아득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산동네 주택과 고층 빌딩, 한양도성이 어우러져 서울의 확트인 전망과 도시적인 모습과 자연속의풍경을 함께 보여준다.  서울의 역사와 나이를 어렴풋하나마 가늠할 수 있었으며 또한 우리 조상들의 한과 설움까지 느껴지는 듯 하다.

2층에는 탁자와 의자가  마련되어 있어 서울의 전경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 창신숭인채석장전망대는

현재 시범 운영 중에 있다. 화~금요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창신채석장전망대에서 야트막한 집들 사이로  골목 골목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특이하게 생긴 건물 하나가 있는데 이 곳은 아이들이 특히나 좋아하는 곳으로 2019년 5월에 문을 연 산마루놀이터~ 
‘우리나라 봉제 산업 1번지’ 창신동에 자리한 산마루놀이터 


산마루놀이터 건물 외관은 바느질할 때 사용하는 골무를 형상화하였고, 실내는 골무홀, 정글짐, 열린광장, 황토놀이터, 모래놀이터 등으로 이루져 있다. 창신동 일대에는 1000여 개의 봉제 업체가 있고, 봉제업 종사자도 3000여 명이나 된다. ‘우리나라 봉제 산업 1번지’로 불리는 이 지역을 생각하면 왜 이런 건물이 들어섰는지 짐작이 간다. 산마루놀이터는 2019대한민국국토대전에서 창의적 놀이 공간이라는 점을 높게 평가받아 대통령상을 받았다.
입구에는 거대한 벌집 모양의 구조물이 있다. 육각형의 구조물은 밧줄로 연결되어  흔들다리를 건너면

정글짐과 연결된다. 만 3세부터 이용할 수 있는 정글짐은 높이 9m에 이르는데도 아이들이 별 무서움 없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정글짐 꼭대기에는 옥상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는 강화유리로 만들어진  데크가 있다. 이곳에서는  남산과

동대문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정글짐 주위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길을 따라 가면  전망대에 오를 수 있는 길이 있다.

1층의 골무홀은 도서관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책과 그림책이 가득하고  각종 마술 도구도 마련되어 있어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다. 산마루놀이터 이용 시간은 하절기엔  오전 9시~오후 7시, 동절기는 오전 9시~오후 6시. 월요일과 공휴일, 설날·추석 연휴에는 문을 열지 않고, 무료로 운영한다.

 

서울 도심 한복판 데이트코스로도 .....  혼자 멍 때리면서 산책 하기에도.......

가슴 답답할 때  바람 쐬러 갈 때도...... 추천 할 만 한 곳....... 창신채석장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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